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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발해 축제와 고구려 여인 고정임 [제2회]
아시아씨이뉴스 | 승인2020.05.04 15:50
김산

동란국[신발해국] 인황왕 감로 5년[930년] 4월 하순.

의무려산을 떠날 때 헝클어진 머리카락 같은 풀섶으로 세차게 빗방울이 떨어졌다. 그것은 기도 같고, 통곡 같고, 절규 같았다. 떠도는 자의 영혼이 빗방울과 함께 도은곡의 떡갈나무 뼛속에 꽂혔다. 매달리는 돌욕을 내쳐버리고 저 혼자 남아 쓰러지는 빗살 꽂으며 떡갈나무는 일렁이는 물결에 바르르 떨고 있었다.

   의무려산을 선방禪房으로 화두 참선을 해 인생을 깨치려고 했던 꿈은 결국 무산된 것이다. 아무리 많은 책을 읽고 명상을 해도, 답을 모르는 답답함과 그 답답함으로 인해 온몸이 의심덩어리가 되었으며, 단지 머리로 하는 알음알이는 생의 근본 해결책이 아니라는 걸 안 것이 수확이라면 수확이었다. 어쨌든 ‘깨달음이라는 것은 없다’는 깨달음을 얻고 의무려산에서 쫓겨나는 심정이었다. 의무려산을 벗어나서 동란국 수도 요양성으로 가는 풍경은 도은곡의 약수를 떠먹고 산속에서 이레를 자고 돌아왔는데, 세상은 이미 칠십 년이 흘러간 그것이었다.

   왕은 강다린과 그의 처 고연실高娟實 및 11명의 경호원만 거느리고 요양성 궁궐을 빠져나왔다. 사실 고연실은 사십대 초반으로 인물도 좋았으며 교양도 갖춘 우아한 여인이었다. 그녀는 알고 보니 문희의 단순한 몸종이 아니었다. 집안의 어려움으로 자진해서 문희를 돌보는 자리로 들어간 것이다. 고연실이 고구려 왕족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대소현이 중매를 섰다. 그래서 그녀는 4년 전, 나이는 오십대 중반이나 만년 젊은이인 강다린과 혼인을 하게 되었다. 다만 국왕 돌욕과 대문희와의 혼례와 겹쳐 두 사람은 세인의 관심을 받지 못했지만 마냥 행복해 했다. 이번에 연실이 발탁된 것은 그녀가 흑룡강 유역의 그물을 말리는 한적한 하얼빈 출신이어서 부여성 주변까지도 지리를 잘 알고 지인들이 많기 때문에 남편인 강다린이 특별히 건의해서 일행에 합류시킨 것이다.

   행차를 비밀에 붙였다. 요동 벌판의 봄을 대표하는 태자하 유역의 평원이 눈앞에 나타났다. 하늘에는 연푸름이 있는 화창한 날씨다. 그래서 산하도 부처님 호상의 피부와 유아의 얼굴에 깃들어 있는 황금빛 연두색이다. 부드러운 어린잎들은 마치 콩기름으로 닦은 것처럼 반짝거리며 북국의 겨울을 물리친 초원의 활력과 환희를 말해주고 있다. 땅은 그런 가냘픈 풀로 완전히 뒤덮여 있는데, 그 풀에는 양과 염소들이 담배담배 갉아먹기를 정말로 좋아하는 붉은 자주 빛이 감도는 덩굴찔레 새순이 있다.

    ‘옹짓들’이라고 불리는 밭의 두렁에 들어서자 눈앞으로는 하늘과 땅이 맞닿은 지평선까지 생명의 싱그러움을 내뿜는 비취옥색 호밀과 초록 청보리가 부드럽게 출렁이고 있다. 광야 전체가 춤을 추는 듯하다. 구름이 드리우는 그늘이 청보리 밭 위로 가늘고 긴 줄무늬를 이루어 미끄러져 가고 있다. 농작물로 뒤덮인 경치가 이렇게 좋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지금 거란도 그렇지만 보리[牟]는 우리의 조상인 선비족의 주곡으로 늦봄의 ‘보릿고개․사료고개’를 넘게 해주어 국가의 주요 제의祭儀 때 사용할 정도로 숭상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황숙기의 황금들판을 약속하는 풍성한 보리밭의 이런 모습은 선비족들에게 얼마나 강렬했으면 그들에게 모(용)[牟혹은慕(容)]라는 성씨를 가져다주었겠는가?

   우측으로 넓고 빽빽한 숲, 번쩍거리는 연못이 있는 외딴 마을이 있다. 황갈색 종다리들이 높이 떠 부르는 노래가 아지랑이에 실려와 아른거리는 소리로 보인다. 녀석들은 머리를 다른 부위보다 조금 더 긴 깃털을 곧추세워 투구를 쓴 모습을 하고, 목은 쭉 뺀 채로 곤두박이로 내려와서는, 흙덩어리 근처로 양쪽 다리를 교대로 움직이며 깡충깡충 아씨처럼 뛰어 다닌다. 그러다가 아마 자기들의 목표점인 갈색의 점이 박힌 네 개의 연푸른 알이 있는 둥지를 찾아 가고 있는 중일 거다. 어서 알을 부화시키고 새끼를 키워 청보리가 황금으로 익어가는 보리누름 쯤 하늘 위로 신예 밭종다리들을 날려 지상의 일을 하늘에 고하려는 당찬 꿈을 실현하려는 모양이다. 까마귀들은 길에서 지나가는 그들을 빤히 보다가 인사 삼아 땅을 콕콕 쪼고 있다.  

    긴 시간 쉬지 않고 마차를 몰아, 빗방울 하나도 요하와 흑룡강으로 냉정하게 가르는, 분수령치고는 야트막한 야산인 솔안산率雁山을 넘으니 새롭게 작은 강이 나왔다. 연실의 말을 빌리면, 그것은 흑룡강의 수많은 지류 중에서 이통하伊通河인데,, 빈주에서 백두산에서 발원한 제2 송화강에 흘러 들어간다고 한다. 동란국 수도 요양성-심주瀋州[현 요령성 성도 심양시]-춘주春州[현 길림성 성도 장춘시]- 황룡부[구 부여부]-빈주賓州 간선도로는 발해의 상경 용천부-거란 수도 상경 임황부와의 간선도로와 이통하가 제2송화강에 합류하는 지점인 빈주에서 만난다고 한다.

   ‘이통伊通’이라는 지명을 가진 곳에 들어서자 도로는 강변을 따라 힘차게 뻗어있다. 도로 오른편에 서 있는 이정표里程標엔 춘주가 150리. 황룡부가 300리, 빈주가 450리라고 쓰여 있다. 목초지에 유목하는 부족은 아보기가 8부를 18부로 확대 개편한 것 중에 오외부烏隗部였다. 그들이 설치한 게르가 멀리서 보니 작은 양털 같이 하얗게 한 점으로 보이다가 차차 우유덩어리 같이 커져 보인다.  

   그들은 산천경개를 완상玩賞하며 마차를 천천히 몰아갔다. 바부르는 홀가분하게 여벌 말들과 함께 주인을 따라오고 있다. 망아지 한 마리가, 꼬리 끝은 잘린 채로 갈기를 곤두세우고 어미 말 뒤에서 비틀거리며 달리고 있다. 어미 말은 발목이 두껍고 천천히 뛰는 모습을 보니 전투마나 경주마는 아니다. 유목 위주의 거란에서 영락한 목민들이 농사꾼으로 나서듯 녀석도 아마 전마戰馬였다가 농마農馬로 전락한 것 같았다. 그러나 분명 성실히 살아가는 농민들처럼 잔병이 없고 기력회복이 빠르면서 묵묵히 힘을 쓰는 농사용 말에 어울리는 덕목을 지녔다. 망아지의 모습은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다. 어린 돌욕이 아버지를 따라 초원의 천막 시장에 갔을 때, 지나가는 망아지를 보고 사달라고 조르던 그 녀석과 영판이다. 어기적거리는 네 다리를 보니 망아지는 풀밭 위에서 태어나 2각[30분] 후 일어설 때, 다리의 길이가 몸체와의 적정 비율을 벗어나 턱 없이 길어서 서툴게 일어서는 그 자세를 아직도 완전히는 떼어 버리지 못한 모양이다. 녀석이 코를 흥흥거리는 소리가 일행의 귀에까지 들렸다. 길옆 숲이 나오자 거기에서 달콤하고 신선한 향기를 흡수하며 휴식을 취했다.

  다시 마차를 달려 오외부 부족장이 웅거하고 있는, 자작나무가 수해를 이룬 백단산白椴山 허리를 비스듬히 감아 돌아 오르며 북으로 북으로 달렸다. 길의 왼편으로는 작은 구릉들이 올망졸망 뻗어있다. 돌욕의 눈에는 거란 군대의 은밀한 배치가 눈에 들어왔다. 자신의 제안이 황제 아보기를 통해 시행된 것이기 때문이다. 경량․기동․첨단을 자랑하는 거란 주둔군은 재빠르고 유연하여 언제 어디로나 신속이동이 가능하다. 그들의 병기와 전술은 자랑할 만하다. 주둔 기지도 요새가 아닌 특수전 병력이 오가는 역참으로 바꿨다. 그런 역참의 군사기지를 ‘수련睡蓮 잎’[Lily Pad]이라는 암호로 불렀다. 개구리가 물 위의 수련 잎을 껑충껑충 뛰면서 옮겨 다니는 것과 같은 군사기지를 변방인 몽골 오르콘유역의 외티겐과 중국과의 국경에 먼저 배치했다. 이곳처럼 옛 고구려의 천리장성 선에 배치한 기지들의 총지휘권은 거란제국의 동북로통군사東北路統軍司에 속하며 다시 그 휘하에 황룡부도부서사黃龍府都部署司와 동북로여진병마사東北路女眞兵馬司를 두어 실무적인 군사행정과 지휘를 하도록 했다. 특수전 부대는 이 기지를 발판으로 전 국토를 3일안에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작전을 전개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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