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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이여..글 : 박노흔(朴魯忻)
아시아씨이뉴스 | 승인2019.08.26 10:09
박노흔(朴魯忻)

월출산이 이렇게 아름답고 감동을 주는 산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다. 가히 작은 금강산이다. 국립공원 자격이 충분하다. 광활한 호남벌판에 우뚝 솟은 산괴의 속살을 들여다본 사람으로서 뿌듯하고 귀족스러워진 마음이 느껴본다. 이 고장 출신은 아니지만 이육사가 그려낸 그 호방하고 슬픈 시를 천황봉 정상에서 떠올려 본다. 어제 강진의 영랑생가에서 뵌 영롱한 색조의 영랑과 눈보라 벌판의 기개찬 육사는 서로가 보색이다. 그 둘을 한 차례의 여행에서 같은 마음에 담아 보다니 색다른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월출산 정상인 천황봉에서 오전 5시 40분에 있다는 일출을 보려고 새벽 3시 40분경 월출산 줄기의 강진쪽의 경포대 탐방안내소를 출발하여 정상을 향해 오른다. 정상까지 3.3Km라고 한다. 깜깜한 숲길을 오른다. 전반부는 동백나무 군락과 계곡물소리를 들으며 걸었고 후반부는 대나무숲과 관목숲을 헤치고 올라간다. 중간에 마신 약수 몇 바가지는 달콤한 仙藥이로다.

그렇게 깜깜한 길을 헤치고 두 시간을 오르니 어느 산이나 그렇듯이 정상 가까이의 관목구역에 마지막 급경사 구간이 나타난다. 얼마를 더 오르니 월출산의 정상 천황봉이다. 사방을 밀도 높게 채운 안개와 구름 사이로 둥그런 달이 서쪽 하늘에 휘영청 언뜻언뜻 나타나더니 반대편 동쪽에 아침 해가 주위에 붉은 기운을 거느리고 얼굴을 내밀었다 사라졌다를 반복한다. 서로가 밀당을 하면서 시간을 느리게 하더니 드디어 태양의 기운이 사위를 제압한다. 곧 모든 방향을 채웠던 운무가 순식간에 걷힌다. 신은 변덕쟁이이다. 저 멀리 외롭게 활강하는 점 같은 솔개가 신의 전령처럼 성스러워 보인다. 모두들 감탄과 촬영으로 정상에서 무려 2시간을 보낸다. 

몇 십 분을 정신 없이 취해 있더니 모두들 배가 고픈 모양이다. 배낭에서 이것저것 꺼낸다. 어젯밤에 준비해둔 빵을 필두로 자신만의 등산필수 주전부리들이 꺼내지기 시작한다. 양갱, 건빵, 과자.. 산행에서 늘 물 2병만 가져가는 것이 전생으로부터의 習으로 고착되어 있는 나로서는 그런 분들의 용의주도함에 天性이 다름을 느껴본다. 다같이 먹기에 적극 동참하여야 하는 것이 山行之道이리라.

하산하는 능선길이 눈앞에 펼쳐져 있는데 육안으로도 길어 보인다. 그런데 그 능선이 있는 곳까지 이르려면 족히 1백 미터 이상은 수직직벽을 내려가야 한다. 아찔함이 줄 전율이 먼저 몸으로 반응한다. 5.8Km를 가면 도갑사에 이른단다. 그곳이 하산 종료점이다. 숨을 멎게 하는 그림 같은 풍광의 수직직벽을 내려가는 걸음을 끝내고 능선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길은 이어진다. 수직길이 너무 아름다우니 여인들의 휴대폰이 바쁘게 돌아간다.

신비한 구멍을 이고 있는 큰 바위덩어리인 구정봉과 오전 11시에 태양광선의 작용으로 사람얼굴이 드러나는 큰바위얼굴, 바람재, 억새밭을 거쳐가는 코스이다. 사람이 겨우 몸을 빼낼 수 있는 남근바위 옆을 뚫고 나와 바람이 넘어가는 재를 지나 구정봉에 올라서 한참이나 애들처럼 재잘거리며들 논다. 천황봉이 몇 킬로미터의 허공을 넘어 스크린처럼 눈앞에 펼쳐져 있으니 계속 눈길이 그곳으로 향한다.

구정봉 정상에서 평온한 마음을 바위 위에 앉히고 있는 찰나, 산행대장의 하모니카 소리가 들려온다. 애절한 음색이다. El es tu. 그렇게 구성질 수가 없다. 푸릇푸릇 젊었을 적 연애시절에 어쭙잖게 끄적거렸던 연애편지에도 그 가사의 일부를 몇 번 담았던 적이 있었다. 다시 돌아가지 못 할 그 때를 추억해보며 입가에 슬쩍 미소를 띠어본다.

희한하다. 구정봉 정상부에 9개의 구멍이 있어 구정봉이라고 한다는데 그 돌구덩이 안에 물이 고여 있고 개구리가 있고 올챙이가 보인다. 어떻게 이 고지의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뜨거운 돌구덩이에 있다는 것이며 번식까지 하고 있다는 것인가?

볼 게 많은 산이다. 남근바위나 필봉, 장군석, 큰바위얼굴로 이름 붙일 곳이 수십 곳은 더 있어 보인다. 하산길 능선의 모퉁이를 돌 때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어느 지점에서든 천황봉이 중심점이 되어 사위를 지배한다는 것이 월출산 등반길의 특징으로 파악해 본다. 하산길의 실거리가 5.8Km라 하나 느낌상 10Km는 되는 것 같다. 하산길 어느 지점에서 맑고 차가운 계곡수에 얼굴, 팔다리를 담구어본다. 살갗에 닿는 물의 감촉, 말로 표현할 방법이 없다.

구정봉에서 0.6Km만 샛길로 가면 높이 8.6m의 마애불이 있다는 표지가 보인다. 그냥 지나치자 하니 아쉬운 마음이다. 호남의 마애불을 아직 친견하지 못하였는데 겨우 0.6Km 떨어진 거리에 선인의 마음이 담겨진 마애불을 친견하지 못하다니. 마애불에는 한땀 한땀 다듬어낸 석공들의 미륵세계를 바라는 마음의 표정이 그대로 보는 이에게 전달되는 따스함이 있다. 

하산길 종착점에는 도갑사라는 천년고찰이 있다. 도선국사를 칭송하는 높이 십여 미터의 공덕비와 넓고 격조 있는 비각실이 있듯이 도선국사가 테마로 주석하는 사찰이다. 미륵전에는 석조불이 주석하고 있다. 법당 건물 안에 석조불이 있는 것은 나로서도 처음이다. 평생 잊지 못할 순간이었다. 10여 분 내려가니 도갑사 본찰이다. 경내로 들어가는 정원입구처럼 만든 장식문 사이로 보이는 대웅전과 어우러진 배롱나무는 한 폭의 그림이다. 그 조화로움에 정신을 잠시 빼앗긴다. 배롱나무 꽃은 한 여름에 草가 아닌 木에서 丹心을 넌지시 던져주는 격조 있는 창조물이다. 남도의 사찰 경내에서 관조하는 배롱나무는 그 격이 도시의 것과는 비교불능이다. 담양의 명옥헌 앞 연못 주위에도 멋진 배롱나무 고목이 있다. 그곳의 맛과 도갑사의 배롱나무 맛은 다르다. 

대웅전, 정말 내부가 높고 넓다. 시원한 마룻바닥이다. 공기순환이 상하좌우로 매우 원활하다. 이마를 시원한 바닥에 붙이고 한참 있으니 머리가 맑아진다. 이 나라 백성들에게 행복을 주십사 하고 머리를 조아려 본다. 오래 기억될 여행이다.

큰바위얼굴

박노흔(朴魯忻) 1955년 12월 9일

- 충정공 박팽년의 17세손.

- 고려대 경영학과 졸업 74학번

고려대 경영대학원 졸업

한국방송대 국문학과 졸업

한국방송대 중문학과 졸업

뉴욕 근무 5년

동경 慶應(게이오)대학 1년 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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