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펠레・호나우지뉴가 인정한‘축구공의 신(神)’세계프리스타일축구연맹 우희용 회장1989년 ‘헤딩’으로 세계기네스북 기록 가난과 부상 딛고 세계 최고 프리스타일축구 권위자로
아시아씨이뉴스 | 승인2019.01.08 11:35

1988년 서울올림픽 소련과 브라질의 결승전. 하프타임을 알리는 휘슬이 두 번 울리고 선수들이 경기장을 나갔다. 그때 축구공을 든 마르고 작은 남자가 경기장으로 들어오더니 축구공을 이용해 묘기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예정 없던 공여이어서 관계자들이 막으려 했지만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전세계 방송 카메라도 그를 찍기 시작했다. 그는 다음해 5시간 6분 30초동안 공을 한번도 떨어뜨리지 않고 헤딩해 기네스 기록을 세웠다.

‘프리스타일축구의 신(神)’ 우희용씨는 한국보다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2004년 세계프리스타일축구연맹(IFFA International Freestyl Football Association)을 만들었다.

축구황제 펠레는 그를 ‘아트사커의 신’이라 불렀다. 우씨는 “프리스타일 축구는 ‘묘기’가 아니라 손을 뺀 모든 신체부위를 이용해 축구공을 다루는 스포츠”라고 했다. 호나우지뉴도 사인을 받는다는 우씨에게 축구이야기를 들었다.

프리스타일축구 전설의 시작

“어릴 적 꿈이 축구선수였지만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장남이었던 그가 운동을 하겠다니 부모님이 반대했다. 운도 따라주지 않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재단이 바뀌면서 축구부가 없어졌어요. 같이 훈련하던 친구들은 다른 학교로 갔는데 저를 받아주는 학교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개인 훈련에 매진했다. 170cm, 작은 키란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점프 연습을 했다. 문제는 지나치게 열심히 했다는 것이다. “너무 무리해서 성장뼈와 근육에 손상이 갔습니다” 선수로서 사형선고였다.

방황했다. 집을 나와 야구방망이 제조공장, 석유배달, 식당 접시닦이, 술집 주방보조 일을 하다가 입대했다.

“중대장님 덕을 많이 봤습니다. 제가 공을 갖고 연습하는 걸 보고 체육부장을 맡겼어요. 훈련하고 남은 시간 공으로 기술을 연습했습니다. ‘이걸 잘하면 먹고 살 수도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1986년 제대 후 본격적으로 연습을 시작했다. 외환은행 용역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아침 6시에 출근해서 2시간 동안 운동하고 샤워한 뒤 일을 시작했습니다. 점심때도 연습을 했습니다. 6시 퇴근하면 3~4시간 동안 연습했고, 그렇게 3년 반 일했습니다.” 이런 노력 끝에 결국 기네스북에 이름을 올렸다.    

기네스북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1990년 이탈리아로 떠났다. 길거리 공연을 하며 하루 벌어먹고 살았다. 단속 나온 경찰이 그의 공연에 반해 손뼉 치고 환호하다 그냥 돌아갈 만큼 인기가 좋았다.

6개월 만에 독일에 건너가 단숨에 유명인이 됐다. 독일 현지 언론에서 그를 대서특필했다. 1993년에는 독일 유명 스포츠 프로그램에 출연해 윔블던 우승자 미하엘 슈트(Michiel Stich)와 공을 주고받는 경기를 하며 명성을 얻었다. 미국, 영국에서도 공연했다. 연맹을 만든 2000년대 중반에는 공연을 한번 하면 8000유로, 1만유로(약 1400만원)를 받을 정도로 인기를 누렸다.

스포츠로 인정받기 충분한 프리스타일축구

그는 여러 축구스타들과 광고를 찍고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무수히 많은 일화를 만들었다.

축구황제 펠레는 그를 ‘아트사커의 신’이라 불렀다. 2003년 당시 세계 최고의 선수였던 호나우지뉴는 나이키 광고를 찍을 때 우씨에게 사인을 요청했다. 2009년 퍼거슨 감독이 ‘가수 비를 아느냐’고 묻는 한국 기자에게 ‘미스터 우를 아느냐’고 되물었다는 일화 역시 유명하다.

호나우지뉴, 웨인 루니 등 세계적인 축구선수와도 친밀하게 지냈다.

그가 체계를 잡은 프리스타일은 이후 계속 발전해 나갔다. 세계 대회도 생겼다. 음료회사 레드불은 2008년부터 1~2년 마다 프리스타일축구 대회 ‘레드불 스트리트 스타일’을 연다. 우씨가 1회 대회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우씨는 그때 한국에서 세계대회를 연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내년 한국에서 프리스타일 축구 세계대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우씨는 한국에서 열릴 세계 대회를 직접 기획했다. “30개국에서 선수를 초청했습니다. 예선전을 거쳐 16명이 파이널에 진출할 예정입니다. 대회 윤곽은 어느정도 잡혀 있고 11월부터 본격적으로 홍보를 시작합니다.”

한국에서 세계대회가 열려도 그의 꿈은 끝이 아니다. 그는 이미 다음 목표를 잡았다. “프리스타일축구가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될 날을 꿈꿉니다. 또 기회가 된다면 북한에도 전수하고 싶습니다.”

출처 잡스엔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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