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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석의 일본 들여다보기】일본역사
아시아씨이뉴스 | 승인2019.01.07 09:59

신불습합 神仏習合

 

우린 일본의 종교를 아는가?

그냥 잡신을 믿는다고 관심이 없는 것이 아닌가? 그 나라의 종교를 안다는 것은 수 세기 전의 역사와 현재로 이어진 문화를 알게 된다는 것이다.

 

일본의 토속 종교는 신도神道(しんとう)이다.

그러면 무엇을 믿는가?

 

산이나 강, 자연현상, 신화속의 신, 원한을 품고 죽은 사람, 지역의 토지신과 조상신(씨족의 수호신) 등등…을 가미(신神)로서 숭배했다.

그리고 그러한 원시 신앙에 가까운 신에게 제를 올리는 곳이 바로 신사이다.

다시 말해서 자연과 신을 일체화 시키는 범신론(汎神論)에 입각한 신앙이 일본의 토속 종교 〈신도〉이다.

 

신도에서는 유일신은 없다.

우리들은 일본의 전통 신앙을 이야기할 때 800만? 신이 있다고 한다.

조금은 사실이 아니다.

 

잘못된 정보는 八百万팔백만을 숫자 그대로 읽기 때문에 빗어진 것이다.

八百万은 숫자가 아닌 やㆍほㆍよろづ 야ㆍ호ㆍ요로쯔 로 읽는다.

여기의 八百万  やㆍほㆍよろづ는

어원을 찾아 들어가면 모두가 한문이 갖는 그 숫자적인 의미가 아닌 모두가 〈많다〉 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들이 사용하는 언어에서 〈백만장자〉를 이야기 할 때 정확한 백만이라는 숫자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많다〉는 의미로 받아드리는 것과 같다 하겠다.   

그러므로 많은 신을 모신다는 뜻이지 숫자의 800만 신을 모신다는 뜻이 아닌 것이다.               

 

일본의 종교를 알기 위해서는 신도만 알아서는 충분히 모자란다.

〈신불습합 神仏習合〉을 모르면 일본 역사와 생활 문화를 이해할 수 없다.

즉 신도와 불교가 하나 되었던 역사를 모르면 깊이 있는 일본 종교를 알지 못한다고 할 수 있다.

 

불교는 6세기 중엽 한반도를 통하여 일본에 도입되어, 쇼토쿠 태자의 아스카 문화를 꽃피웠다.

불교가 일본에 처음 들어 올 때는 신라와 같이 큰 저항이 있기도 하였으나 곧 이웃 국의 신앙으로 더 이상 큰 저항감 없이 유입되었다.  또 불교는 고대국가 성립에 필요한 문자가 보급되기 시작한 큰 문화의 시작이 싹트는 계기였다.

애초에 불교는 대륙의 선진 문물을 운반하는 통로로서 천황 등 지배 계급으로부터 크게 환영받았다.

 

〈신불습합〉 이라 함은 일본이 불교를 수용한 후 토속신앙인 신도(神道) 신앙과 불교 신앙이 융합한 결과 나타난 하나의 신앙 형태를 말하는 것이다.

 

좀 더 정확히 이야기하면 수 많은 신도의 토속적 신(神) 중에 불교를 포함시켜 하나의 신으로 자리매김하며 자연스럽게 민중속에 스며들었던 것이다.

 

그것은 마치 북인도에서 팔리어의 속어로 한역(漢翻) 된 불교의 경전이 중국을 통하여 동북아시아에서 전해졌다. 그 불교라는 종교가 한반도에서 크게 꽃피웠는데 이것은 힌두교가 아니다.

엄연히 독립되어진 종교인 불교이다.

그러나 일본의 신불습합 속의 불교는 인도에서는 힌두교 속에 수 많은 신이 있고 불교도 하나의 작은 신으로 존재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일본에서 〈신불습합〉의 그림자는 길어 현재의 진쟈(신사) 건물 양식에도 당시의 불교서 영향 받았음을 알 수 있는 모습이 여럿 있다.

 

이렇게 깊숙이 부부처럼 영원할 것 같던 하나된 신도와 불교의 관계도 불화가 일어난다. 에도막부 전기에 조선의 강항 등으로부터 유교가 들어와서 자리잡으며 배불 정책이 시동을 건다.

조선도 이성계가 통치이념으로 유교를 앞세우며 불교를 탄압한 것과 같다.

에도 막부의 도쿠가와의 지시에 따라 역내의 절간은 이때 벌써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메이지유신 시대에 들어와서는 신불 판연령(判然令)에 의해 근대 이후 신도와 불교는 더 명확하게 구분되었다.

심지어 전국적으로 불상을 파괴하는 일이 급속도로 퍼져 나갔다. 이렇게 일본의 불교는 한반도와 같은 독립된 신앙의 종교로서 지위를 갖지못했다. 그러나 통치자들에 의해 불쌍히 쫓겨나 듯 독립된 종교로 인정받는? 본연의 자리로 돌아왔다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아픈 역사를 가진 일본의 불교!

〈신불습합〉 상태를 해결하고자 한 것은 메이지 정부의 종교정책에 기초한 것이다. 그것은 신사신도와 불교 종파의 구별을 명확하게 하였지만 그러나 일반 사람들의 신앙생활에서는 여전히 〈신불습합〉 상태를 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출생과 성장과정의 많은 행사 관련은 신도식으로, 근래에 와서는 결혼식은 교회서 신앙을 떠나 색다른 이벤트성으로 하는 젊은이도 늘어난다. 하지만 장례식은 아직도 불교식으로 하는 사람이 상당히 많음이 그러하다.

 

일본은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신사나 절, 교회에 결혼식으로 찾아가는 것은 "신앙" 때문이 아닌, 생활의 양식에 불과한 경우가 많음을 쉽게 확인 할 수 있다.

 

신도는 메이지 시대에 기독교의 영향으로 아담 해와에 해당하는 남녀의 신과 예수님에 해당하는 구세주의 신을 교리에 삽입하게 된다. 또 신도식 결혼식을 전통 결혼식이라 하는데 여기에도 기독교적 격식이 많이 가미되었다.

 

그래서 이제 과학이 발달되어 별로 누군가에게 의지할 필요가 없을 것 같이 보이는 시대에 와서도 그냥 조상들이 지금까지 그러하듯이 당연한 생활 속 문화의 일부가 되어버렸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보기에 〈유일신사상〉이 전혀 없다.

그렇다. 일본인은 하늘神에 대한 믿음의 정조 개념이 없는 것이 아니라 다신론이 문화로 자리잡아 신앙 자체가 거의 없다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종교를 공부하면서 〈신불습합〉에서 집권자의 탄압으로 인한 불교가 분리되어져 나오는 아픈 종말을 보았다.

다시 눈을 감고 생각해본다.

세계사의 전쟁 중 가장 치열한 전쟁은 종교 전쟁이었음을~

집권자가 탄압을 하여도 간단히 죽일 수 없는, 없어지지 않는 종교를 새삼 돌아보게 만든다.

 

오늘 따라 상점가 앞에서 갓을 눌러쓰고 목탁을 두드리던 일본의 스님(おぼうさん) 이 처량하게 다가온다. 그러나 아직도 생활 속에 건재한 일본 속 불교가 대단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또한 비록 한국인에게는 어색하게 다가온 유일신이 아닌 다신多神을 모시는 선진국 일본! 

 

아직도 다 속속들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일본의 신도!

2차대전 후의 생활 속에 평안함이 이어지는 일본의 모습은 내 머리 속에 그 무엇에 대해 정리되지 않고 물음표가 계속 떠다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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