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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판의 우정, 소나무의 메시지
아시아씨이뉴스 | 승인2018.03.16 16:26
현의송 한일농업농촌문화연구소 대표

한국과 일본 두 나라는 지리적으로 무척 가깝지만 정서적으로는 결코 만만치 않은 거리를 두고 있다.

한국가 일본 두 나라가 정치적으로 선린 우호 관계를 강조하고 있음에도 때로 국민감정은 견원지간처럼 격해지기 십상이다. 특히 승부가 곧바로 결정되는 축구와 야구 등 두 나라 사이의 스포츠는 흡사 전쟁과 같은 열기를 띠어서, 선수들이 승패에 따라 영웅이 되기도 하고 역적이 되기도 한다. 우스갯소리로 ‘가위바위보도 져서는 안 되는’ 자존심 싸움이 두 나라 사이에 벌어지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우리는 한국인과 일본인이 국적을 떠나 서로 얼마나 깊은 우정을 쌓고 존중할 수 있는지 생생하게 목격한 바 있다. 평창동계올림픽에서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미터 부문 금메달과 은메달을 나눠 가진 일본 고다이라 나오(小平奈緖) 선수와 한국 이상화 선수 이야기다.

두 선수는 간발의 차로 승부가 결정된 직후 어깨동무를 하고 빙판을 돌면서 서로에게 아낌없이 축하하고 진심으로 위로했다. 더구나 이상화가 일본에 가면 고다이라가 돌봐주었고, 고다이라가 한국에서 경기를 마치고 출국할 때 이상화가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잡아 택시비까지 내줬다는 것 아닌가. 빙판이라는 치열한 승부의 세계에서 이들은 어쩔 수 없이 상대보다 한 발짝이라도 앞서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곤 했지만, 그 경쟁 자체가 단순한 승부욕을 넘어 서로 존중하고 격려하는 방식이었다는 사실에 뭉클한 감동마저 느낄 수 있었다.

조금 다르면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영암에서는 요즘 적송 한 그루가 화제가 되고 있다. 영암군농협 조합장을 지낸 고 송동암 선생과 조동현 씨 부부 등 지역 인사들에 따르면, 영암중학교 교정에 우뚝 서 있으며 교목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는 이 소나무는 1932년 4월 1일 일본인 효도 가즈오(兵頭一雄)가 심은 것이라고 한다. 영암에서 간척사업을 하면서 직접 농장도 경영한 효도는 관선 전남도회 의원까지 지낸 실력자였다.

당시 영암에 거주하는 1천여 명의 일본인 친목회인 <영암회> 자료에 교사 나카노 미노루(中野實)는 효도에 대해 ‘그의 영농 목적은 일본의 식민주의와 모순이었다. 영농을 중시하면 예속 농민이 수탈의 결과 피폐해지고, 농민의 자립을 중심에 두면 농장 경영이 어려워질 것을 걱정하는 이상주의자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나카노 역시도 자신의 생각을 <영암회> 자료 말미에 ‘오래 전 일본이 조선에서 훌륭한 문화적인 선물을 받아 그것을 피와 살로 삼아 오늘날을 살고 있으면서, 조선과 조선인의 문화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있으니 참괴(慙愧·매우 부끄러워함)스러워 참을 수가 없다’고 적었다.

물론 효도가 영암중학교에 사쿠라(벚꽃)가 아닌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소나무를 심었고 조선 농민의 수탈에 고뇌했으며, 나카노가 조선의 문화를 숭상했다고 해서 일본의 식민지배가 정당화될 수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 엄혹한 시절에도 이렇게 조선인의 처지를 걱정하고, 과거 자신들을 일깨웠던 조선의 문화를 무시하는 일본을 부끄러워하는 일본인들이 있었던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광복이 되자 효도 가즈오도 나카노 미노루도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홀로 남은 소나무는 아름드리 거목으로 자라 학생들에게 쉼터를 제공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영암 사람들은 왜 효도가 심은 소나무를 베어버리지 않고 놔둔 것일까. 바로 앞에 보이는 월출산에도 소나무가 지천으로 자라고 있으니 특별하게 여겨지지도 않았을 텐데 말이다. 혹시 영암 사람들은 효도 가즈오가 일본 사람이기는 해도 미워할 수만은 없었던 것 아닐까.

이 소나무를 효도의 외손자인 오카다 유스케(岡田) 씨가 매년 찾는다고 한다. 오카다 씨는 일본의 최고 배우이자 영화사 회장으로서 많은 사람들이 추앙하고 있다. 그는 영암을 방문할 때마다 영암중학교 교정의 적송을 통해 외조부의 숨결도 느끼고, 왕인을 배출한 영암의 문화도 향유하고 할 터이다. 소나무 한 그루가 한국과 일본의 가교가 되고 우정의 매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문득 한국과 일본의 현실을 생각해 본다. 두 나라가 언제까지나 과거에 발목이 붙들려 반일(反日)이니 혐한(嫌韓)이니 하며 다투기만 한다면 동반자적 발전은 기대하기 어렵지 않을까. 다행히 스케이팅 선수인 이상화와 고다이라 나오가 빙판에서 다진 우정, 일본인이 심은 영암중학교 적송이 전하는 메시지에서 한국과 일본, 그 우정의 가능성을 본다.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가까운 두 나라가 서로에 대한 이해의 뿌리를 깊이 내리면서 미래를 향해 질주하기를 기대한다.

 

(현의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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